김우중 회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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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저녁 숙환으로 별세했는데요. 자세한 내용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단법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김우중 전 회장이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에 들어갔다고 밝혔습니다. 대우세계경영연구회에 따르면 김우중 전 회장은 평소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왔습니다. 

김우중 전 회장은 지난해부터 건강이 나빠져 입원과 통원 치료를 반복하다 최근 입원 치료를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김우중 전 회장은 지난해 8월 말 이후 건강이 나빠져 통원 치료를 하는 등 대외활동을 자제해왔는데요. 이후 12월 말부터 증세가 악화해 장기 입원해 투병생활을 해왔습니다. 최근에는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습니다.  이로써 김우중 전 회장이 참석한 마지막 공식 행사는 지난해 3월22일 열린 대우 창업 51주년 기념식입니다.  

김우중 전 회장이 설립한 대우그룹은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재계 서열 2위까지 기록했지만 1999년 부도를 맞고 해체 되였습니다. 대우그룹 전직 임직원은 경제 동향 강연·학술 모임 등 다양한 소모임에서 교류하고 있습니다. 

 

김우중 전 회장은 최근까지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한국의 젊은 사업가를 양성했는데요. 전,현직 대우그룹 임직원 모임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베트남·미얀마·인도네시아에서 글로벌 청년사업가 양성사업을 운영하였습니다. 한국 대학 졸업생을 선발해 동남아 현지에서 무료로 취업 교육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김우중 전 회장은 건강이 악화되기 직전에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GYBM 교육 현장을 다녀왔다고 합니다. 

 

대우 관계자에 따르면 우중전 회장은 "청년들의 해외진출을 돕는 GYBM 교육사업의 발전적 계승과 함께 연수생들이 현지 취업을 넘어 창업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체계화해줄 것"을 유지로 남겼습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르는데요. 유족으로는 미망인 정희자 전 힐튼호텔 회장, 장남 김선협 ㈜아도니스 부회장, 차남 김선용 ㈜벤티지홀딩스 대표, 장녀 김선정 (재)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사위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등이 있습니다.

 

김우중 전 회장이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영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세운 대우는 한때 자산 규모 재계 2위라는 놀라운 성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대우가 우리 경제에 더 중요한 이유는 한국의 수출 산업의 선도자이자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는 점입니다.

1960년 섬유수출업체인 한성실업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한 김우중 전 회장은 1967년 31세의 나이에 자본금 500만원으로 서울 충무로에 작은 수출업체인 대우실업을 창업했습니다. 단순한 중소기업으로 시작했던 대우실업은 1970년대 경제성장과 중동 붐, 수출 호조에 따라 급격하게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한국 기업 최초로 해외 지사를 설립하는 등 초창기부터 김우중 전 회장과 대우는 세계를 무대로 활동했습니다. 1972년에는 국내기업 수출 5위를 기록하는 등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이후 대우건설과 대우전자, 한국기계, 대우조선,대우자동차 등을 설립하거나 인수해 정상화시켜 그룹으로서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대우그룹은 창업한지 10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1970년대 후반 현대그룹과 삼성그룹, LG그룹에 이어 재계 4위까지 올랐습니다.

1980년대는 대우그룹과 한국 경제의 세계속 위상이 더 높아진 시기인데요. 대우는 1982년 모기업인 ㈜대우를 세우면서 그룹사의 외형을 갖췄게 되였고 이후 동양증권과 삼보증권을 인수해 대우증권을 설립하며 금융업까지 사업을 확장시켰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성공으로 한국 경제는 더욱 자신감이 붙었고 대우그룹 역시 세계 곳곳으로 사업을 넓혀갔습니다.


1990년대에는 김우중 전 회장은 대우그룹의 사업과 경영이념을 세계경영으로 체계화했습니다. 특히 1980년대 후반부터는 북방외교 기조에 따라 폴란드·헝가리·루마니아·우즈베키스탄 등 민주화 바람이 불던 동유럽과 구소련 같은 사회주의권 국가에 중공업·자동차 사업을 통해 대대적으로 진출했습니다.

1998년 대우의 해외 네트워크는 현지법인만 396개 등 총 589여곳이었습니다. 당시 해외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종업원만 21만9000명인 것만 봐도 대우그룹의 글로벌 규모를 짐작할수 있었습니다. 1998년 말 대우는 자산 기준으로 삼성과 LG를 제치고 현대에 이어 2위까지 올라서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대우의 공격적인 확장, 특히 해외 중심의 경영은 외환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독이 되였는데요. 결정타는 1999년 쌍용자동차 인수였습니다. 외환위기 전까지는 부채로 외형을 키우면서 사업을 확장했던 전략이 먹혔지만 외환위기로 인해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그룹 전체가 흔들렸고, 결국 김우중 전 부회장은 대우그룹 해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룹 해체 이후 일부 계열사들은 다른 기업으로 피인수돼 명맥을 잇고 있는데요. 지주사 역할을 했던 ㈜대우는 포스코에 인수돼 현재 포스코인터내셔널로 사명을 변경했습니다. 대우자동차는 GM을 팔렸고 현재 GM코리아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두기업 모두 한참동안 포스코대우, GM대우 등 대우라는 명칭을 사용하다가 최근 몇년새 대우라는 이름을 이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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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대우종합기계는 두산그룹의 두산인프라코어로, 대우조선공업은 대우조선해양으로 지속중 인데요. 대우전자는 지금의 위니아대우, 대우중공업은 현대로템으로 각각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우증권은 미래에셋에 합병돼 미래에셋대우로 사명이 변경 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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